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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독립운동가

참고문헌: 최필숙(2017). 일제 강점기 미리벌의 분노와 희망.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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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534회 작성일 18-09-26 13:13

본문

박 지 원(朴 志 源)

 

189311.2. ~ 1966.2.28.

무안면 삼태리 43

국내항일(임정군자금모집)

애국장(1990)

 

인숙(仁叔) 박지원 선생은 밀양군 무안면 삼태리 43번지에서 1893112일 출생하였다. 기독교 신자였던 선생은 부북면 춘화리 만세의거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뒤 독립운동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계하여 전국 각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폈다. 1919년부터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로 보내는 활동 중 19201029일 동래군 구포면 화명리에서 무기를 휴대하고 행인을 대상으로 군자금 50원을 모금하였다. 이 일로 인해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다. 관계된 사람을 모두 색출하기 위해 갖은 고문을 다 가했으나 혀를 깨물고 남은 7명의 동지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일본인 검사도 할 수 없어 선생만 기소하였고, 선생은 192113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죄로 징역 7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4년에 감형되어 36개월간의 긴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옥하였다. 부인 함안 조씨와의 슬하에 61녀를 두었고, 생존하고 있는 막내 아들 박현규와 외동딸, 부북면 청운리에 거주하는 외손자(김달홍)의 증언에 의하면 영면할 당시 고문의 흔적이 온 몸에 나타나 차마 눈으로 볼 수 정도였다고 한다. 선생의 묘소는 무안면 정곡리에 있으며, 1983년 당시 선생의 공훈을 기린 공훈비와 기적비 등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막내 아들이 고향 생가와 묘소를 돌보고 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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