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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독립운동가

참고문헌: 최필숙(2017). 일제 강점기 미리벌의 분노와 희망.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손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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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444회 작성일 18-09-26 13:02

본문

 

손 경 헌(孫 庚 憲)

 

1870.4.6. ~ 1931.8.2.

단장면 안법리

만주방면(군자금모집)

애족장(1990)

 

성하(成河) 손경헌 선생은 밀양군 단장면 안법리에서 187046일 태어났으며, 장옥(章玉), 병헌(昺憲), 곡장(谷長) 등의 이름도 사용하였다. 1907년 대한협회 밀양군 책임자로서 민족사상 고취운동을 일으키다가 자신의 능력이 절대 부족함을 통감

하여 191311월 가족과 함께 만주 환인현 육도하자로 이주하여 농장을 개척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이주해오는 한인들에게 농지를 나누어 주어 생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도왔다.

19194월에 환인현 한인회의 교민회장에 선출되어 이국땅에서 망국의 설움에 신음하는 동포들을 보살피는 한편 조국광복을 위한 동지 규합에 전념하였다.

선생은 흥업단과 연대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192011월 길림성군정서 소속 흥업단의 군관양성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황문익·최인제·최성기와 흥업단원 이만준을 국내로 파견하여 6만원을 모금하였다. 당시 선생의 부하는 3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친척인 손종헌에게 사람을 보내서 모금하면서 밀양의 독립운동 세력과도 연계 관계를 유지하였고, 남북만주에서 널리 산재하여 각 방면으로 활동하는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였다. 선생은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182일 이역만리에서 한 많은 생애를 마쳤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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