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어닫기
경남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 jsseul@korea.kr 055 . 359 . 6060

밀양의 독립운동가

참고문헌: 최필숙(2017). 일제 강점기 미리벌의 분노와 희망.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황문익

페이지 정보

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370회 작성일 18-09-26 11:52

본문

황 문 익(黃 文 益)

 

1879.12.9. ~ 1953.5.8.

부북면 대항리 700

만주방면(군자금모집)

애족장(1990)

 

황문익 선생은 밀양군 부북면 대항리에서 1879129, 황정현(黃庭顯)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국사(菊史)이며 황문익(黃文翊)이라 불렸으나, 제적등본에서의 선생의 본명은 황영주(黃永周)이다.

1907년 단장면 출신 손경헌의 주도로 조직된 대한협회밀양군지부에 가입하고 애국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활동하다 경술년에 한일병탄이 되고, 일본의 횡포가 심해지자 19134월 가족들을 인솔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 봉성현에 정착하게 되었다.

선생은 손경헌과 함께 독립운동에 활약하다가 191931운동 이후 만주에서 흥업단에 가입, 무송현에 있는 백산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192011월 흥업단 단장 김호로부터 길림성군정서 부속 흥업단 군관 양성자금 20만원을 모금하라는 명령을 받고, 손경헌이만준최인제최성기 등과 국내로 잠입하여 경상북도 지방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여 6만 원정도를 모금하던 중에 192212월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오랜 기간 모진 고문을 당하였고, 이듬해인 1923년 봄, 대구지방법원에서 16월의 실형을 언도받고 옥중에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