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어닫기
경남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 jsseul@korea.kr 055 . 359 . 6060

밀양의 독립운동가

참고문헌: 최필숙(2017). 일제 강점기 미리벌의 분노와 희망.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신석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473회 작성일 18-09-26 12:53

본문

신 석 원(申 錫 遠)

 

1881.1.12. ~ 1959.1.22.

하남읍 수산리 595

임시정부(임정군자금)

애족장(2010)

 

 

신석원 선생은 하남읍 수산리 595번지에서 신상문(申尙文)의 장남으로 태어나 이명으로 종휴(從休), 숙현(淑賢), 선호(先怙)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1924년 음력 3월부터 고향인 밀양에서 신기균, 김찬규 등과 함께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독립군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밀양교육회의 고문을 맡고 있는 동지 김찬규가 1924년 음력 3월경 임시정부에서 파견되었다는 김보현이란 사람으로부터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 명의의 군정서 총국장에 임명한다는 사령서를 받게 된 것을 계기로 선생과 김찬규는 이를 근거로 하여 유사한 다수의 사령서를 만들어 타인들에게도 배부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동지들을 규합할 것을 모의하였다.

1924720일경 자신의 집에서 사령서 70매를 인쇄하고 신기균 등 5명에게 나누어 주는 등 은밀하게 독립운동 자금의 모집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 선생은 1926 1월 신기균, 송채원과 함께 밀양에서 경북 경찰부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1926323일 대구 지방법원과 51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징역 16월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1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