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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독립운동가

참고문헌: 최필숙(2017). 일제 강점기 미리벌의 분노와 희망.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이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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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565회 작성일 18-09-2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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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 래(李 康 來)

 

1869.11.16. ~ 1932.9.8.

하남읍 명례리 1213

만주방면(군자금)

건국포장(2009)

 

18691116일 하남읍 명례리에서 이기형(李起炯)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강래 선생은 중국 서북간도 지역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국내에서 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에 의한 한국의 식민지화가 기정사실화 되자 많은 애국지사들이 국외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추진하였는데, 선생은 안창호·김구·이회영 등이 조직했던 비밀결사체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19103월부터 본격적인 모금 활동에 들어갔다. 이러한 노력으로 1910년 말부터 서간도 환인현, 유하현, 통화현 지방에서 간도 독립운동기지 건설이 시작되었다.

안동 출신의 애국지사 석주 이상룡 또한 1911년에 전 재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여 가족을 이끌고 서간도 독립군 기지로 이주해 항일독립운동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즈음, 이강래 선생도 이들 애국지사들과 마찬가지로 서북간도 지역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선생은 우선 독립운동기지 건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146월부터 황해도의 재산가 남임호의 토지 매각을 주선하여 수백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19156월경에는 동지인 김정빈·이승호·이승규·남정호·유연건·신언학 등과 함께 중국 총통 원세개(위안 스카이)가 조선의 공사로 있을 때 광무 황제(고종)에게 은 26만 냥을 빌렸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받아내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사용하는 방법을 강구하기도 했다. 또한 원세개에게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을 제안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8, 9월부터 서울·경상도·황해도 지역을 돌아다니며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한 동지 규합에 나섰다.

그러나 선생의 국권회복운동을 위한 자금 모집 활동이 일제에 의해 탐지되어 1916411일 이강래·김정빈·이승호·이승규·남정호·유연건·신언학 등 7인이 서울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강래 선생은 19161228일 경성 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사문서 위조 행사,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언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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