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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독립운동가

참고문헌: 최필숙(2017). 일제 강점기 미리벌의 분노와 희망.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이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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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433회 작성일 18-09-26 12:16

본문

 

이 순 여(李 順 汝)

 

1885 ~ 미상

밀양시 상남면 오산리(멕시코 멕시코시티)

미주방면(멕시코시티지방회)

대통령표장(2017)

 

   

선생은 19054월 영국인이자 멕시코 국적의 국제이민 브로커 마이어스와 일본의 대륙식산합자회사 직원 오바 간이치의 계략에 속아 가족을 포함한 한인 1,033명과 함께 멕시코로 4년간 노동 이민을 떠났다. 511일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에 도착하여 에네켄농장에서 일하였다. 이후 치와와·소노마 등지를 유랑하다가 1912년 멕시코시티에 정착하여 아버지 이성로(李聖老), 형 이인여(李仁汝) 등과 함께 시계 수선업을 개업하여 실업가로 성공하였다.

 

191210월 대한인국민회 멕시코시티지방회(墨京市地方會)를 설립하고 회원이 되었다. 191511월 멕시코혁명으로 8개월간 회무를 정지하였던 동 지방회 업무를 재개하고 재무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1710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安昌浩)가 방문하자, 직접 영접·안내하였다. 1918년에는 총무, 1919년 법무로 2월 대한인국민회 창립기념식, 4월 임시정부 수립 경축식, 8월 국치기념식 등에서 연설 등을 하였다. 19287월 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고, 193111월 자성단이 멕시코시티에서 혁명운동 준비금을 모집하기 위해 주례금을 모집하자, 주례금 동맹자로 참여하였다.

1942년 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서 한동안 정지된 지방회 업무를 복구하였다. 회장 선임 후 능통한 스페인어로 외교 수완을 발휘하였다. 3월에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상무부에 한국인의 안녕 보장을 위한 외교와 선전 통일, 멕시코 정부에 임시정부 승인 촉구 등의 내용이 담긴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5월에는 멕시코 이민국장과 협의하여 한국인의 국적을 일본이 아닌 자유한인으로 등록하도록 하였다. 또한 7월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로부터 멕시코 모든 한국인의 교섭사건을 위임한다는 정식 위임장을 발급받았다. 이후 멕시코시티지방회는 멕시코 각 지방회의 업무를 대한인국민회 중앙상무부 대신 직접 처리하게 되었다. 1943년도에도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어 각종 기념식 등을 주관하였으며, 1945년에는 총무를 맡아 활동하였다. 1912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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