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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독립운동가

참고문헌: 최필숙(2017). 일제 강점기 미리벌의 분노와 희망.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조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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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441회 작성일 18-09-26 12:04

본문

 

조 우 식(曺 友 植)

 

1927.12.28. ~ 2006.3.24.

무안면 가례리328(본적)

국내항일(학생운동)

애족장(1990)

 

조우식 선생은 19271228일 밀양군 무안면 가례리에서 조영발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마산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2년 동기생 김희구 등과 함께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을 비판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국제 정세를 관망하면서 일제의 폐망을 예견하고, 다가올 독립에 대비하기 위해 우선 동지들의 규합에 매진하였다. 1943년 겨울 항일결사 경남학생건국위원회(이하 경남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경남위원회는 연합군측에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계획 아래 일본 해군 요새지인 마산, 진해 방면의 군사 시설을 탐지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경남위원회는 김해농업학교에서도 조직을 결성하고 있었는데, 19446월에 김해농업학교에 있던 조직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조직의 전모가 백일하에 들어나게 되었다.

조우식 선생은 19447월 일경에 검거되어 동년 11월에 부산 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단기 2년 장기 4년의 형을 언도받고 인천에 있는 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8·15를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 후 1990년 훈격을 높여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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