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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독립운동가

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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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독립기념관 댓글 0건 조회 201회 작성일 18-09-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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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인 수(姜 人 壽)

 

1900.12.29. ~ 1992.2.26.

내일동 254

중국방면(의열투쟁)

독립장(1980)

 

강인수 선생은 밀양군 부내면 내일동 254번지에서 아버지 강윤길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강팔수(姜八壽)이다.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건국포장(2004)을 받은 강덕수는 그의 친동생이다. 밀양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고향에서 지내다 친구인 김원봉·한봉근·윤세주 등이 중국에서 의열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1923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이들과 함께하였다. 선생은 중국에서 활동할 때에는 양검(楊儉)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상해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동지들과 같이 활동하던 중 19261월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 황포군관학교(중국 육군군관학교) 4기생으로 입교할 때 박효삼·강병국·유원옥·박건웅·전의창·이우각·권준·이집중·왕자랑·윤의진·최영택·이종원·이기환·김종·노을용 등과 함께 선생도 양검이라는 가명으로 입교하여 중국 육군군관학교의 군사 교육을 이수하였다.

황포군관학교는 광동성 광주에서 10km 가량 떨어진 황포섬에 있었는데, 장개석을 교장으로 하는 국민당 정부의 육군사관학교로 교수부 주임에 섭검영, 교련부 주임에 동연달, 정치부주임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주은래가 맡고 있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주요 군사교육기관으로 진보적이고 과학적인 전투 기술과 군사 교육의 실제적 체험을 통하여 강력한 혁명군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중국 공산당과 합작하여 만든 학교이다. 이곳에 약산을 비롯한 의열 단원들이 참여하게되었던 것이다.

황포군관학교 교육과정은 제1기의 경우 6개월이었으나 제2기부터는 1년으로 바뀌었다. 학생들의 일과는 오전 5시에 기상하여 오후 9시 반에 취침에 들 정도로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그들은 대략 8시간 실습을 하였으며 하루 수면 시간은 8시간이었다 .

강인수 선생은 1926년 말 졸업 후 중국군 장교로 임관되어 교관·중국군 배련영장·부단장·주임 등을 역임하면서 대일항전에 참여하였다. 19407월부터는 조선의용대 및 민족혁명당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9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광복군을 창설하자, 광복군 창설 요원으로 총사령부에 배속되었고, 그 후 중국군의 장교로서 복건성 전선에서 싸우다 8·15 해방을 맞았다.

194510월 광복군 광동 잠편지대에서 최덕신 지대장의 참모로 활동하면서 일본군 내의 한인 사병 접수 업무 및 광복군의 확대 문제와 일본군 무장 해제의 협조, 그리고 한인 교포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진력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때 합류하지 않고 계속 중국에 머물다가 중국(대만)의 군인이 되었고, 1951년에 중국 육군 소장으로 승진되어 계속 타이완에서 복무하였다. 1965년 퇴역한 뒤 타이페이(台北)에서 거주하다가 1992226일 대만 신죽시 죽동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슬하에 여식인 양귀용(楊貴用)이 있으며, 현재 남경대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 중이다. 정부에서는 선생에게 1980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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